2025.03 프리랜서 예술가 백수는 왜 엔지니어가 됐나?
2021년 가을 엔지니어로 인생 첫 정규직 직장인이 되었다. 2018년 겨울 그 추운 성북구에서 날 밤 까며 투바이에 실리콘칠하며 전시장 가벽을 세우고 손 곱아 가며 퍼포먼스 리허설을 하던 내가 갑자기 맥북 하나 펼치고 키보드 두드리는 엔지니어가 됐다.
2018년 겨울 그 음산하던 예술학교의 추운 언덕에서 아빠는 내가 4년제 국립대학 졸업할 때까지 취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에 황당해하며 무지막지하게 날 몰아붙였고, 나는 예술가에게 뭔 취업인가 그게 예술학교 보내려고 중학교때부터 준비시킨 부모의 마음이었는가를 의심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사준 따뜻한 밥을 얻어먹고 다시 목장갑끼고 졸업전시 설치를 했더랬다.
그 날 눈이 퉁퉁 부은채로 흰색 페인트를 칠한 가벽에 왼쪽 10센치 하나하나 신경쓰며 들어오는 문에서부터 작업에 도달하는 전시동선을 테스트할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다닌 학교는 학부 졸업식 때 예술극장 무대에 졸업생들을 모두 앉히고선 무대 위 스크린을 졸업생들 앞으로 내린다. 그리고 나는 그 스크린 뒤에서 학교에서 매년 제작하는 졸업축하영상을 반전된 상태로 봤다. 학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어느 분의 축사가 기억에 난다. "오늘부로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 백수가 될 n00명에게 축하를 전합니다."
그렇게 나는 2019년부터 빛좋은 개살구 프리랜서이자 예술가이자 백수로 살았다. 전시도 6-7번, 내 사업자 이름으로 된 작업실도 운영하고, 문화재단 지원사업에 3년간 선정돼 오픈스튜디오도 꼬박 열고, 뮤직비디오도 찍고, 친구가 하던 패션브랜드 팝업 아트디렉팅, 넷플릭스 제작 다큐멘터리 연출에도 참여했다.
나는 3년간 예술이 세상을 구하리라는 믿음과, 10년간의 투자,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오감을 이유로, 그리고 아빠에게 내가 취업을 왜 하냐고 성질부리던 그 날의 오기로 살았다.
커피챗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가 다 물어본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내가 예술하다 왜 갑자기 엔지니어가 됐는지 너무너무 특이하다며 인터뷰를 3번이나 요청하셨다. 그럴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예술하는 동료들은 제가 엔지니어가 된게 신기한가봐요. 엔지니어 동료들은 제가 예술했다는게 신기하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저만의 자연스러운 플로우가 있었어요." 다. 다들 처음부터 엔지니어가 천직인것처럼 개발하던 사람들도 아니면서 꼭 그렇게 물어본다.
솔직하게는 나는 90년대생으로서 컴퓨터, 인터넷과 스마트폰 격변기에 살았고, 2019년 코로나 시기에 코딩공부 트렌드에 올라타 막차타고 엔지니어가 됐다고 생각한다.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직장인이 된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건데, 자연스럽게 커리어가 변화했다는 그 의미를 다시 말해보면 이렇다.
예술은 결과물의 형태가 설득력을 가질 때까지 그 구조를 쌓아올리는 작업이다. 그냥 냅다 물감뿌리고 알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준다고 작업이 되지 않는다. 저건 내가 해도 되겠다느니 점하나 찍은게 왜 저리 비싸다느니 하는 말은 더이상 화를 내고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언어화 할 수 없는 감각의 형태로 무언가 만들어내고, 그리고 그 결과물이 거꾸로 그 구조를 서서히 드러낼 수 있을 때 성공적인 작업이 되는데 그 과정을 나는 즐겼다. 나만의 설계와 방법론으로 차곡차곡 쌓다가 적절한 순간에 완성하는 그 과정을 사랑했다.
엔지니어링은 이런 과정이 예술과 닮았다. 꺼먼 화면에 뭔가 논리적인 형태로 코드를 이리저리 붙이고 옮기고, 느슨하게 분리했다가 어쩔땐 다시 합치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필요한 모습을 갖춘다. 흩어진 로직들이 각자는 의미를 가지지 않다가 모여서 어떤 폭발적인 힘을 가질 때, 좋은 프로덕트가 만들어질 때의 쾌감. 그런걸 나는 즐긴다.
또 나는 함께 뭔가를 이뤄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해내는 것보다 동료와 함께 뭔가를 해냈을 때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예술가로 작업할 때는 내가 홀로 모든 걸 다 해내야 했다. 물론 같이 해야만 하는 프로덕션 현장들이 있지만, 어쨋든 어떤 궁극의 순간에는 철저하게 나 혼자가 되어야 한다. 그 외로움을 견디기에는 내가 그만큼 예술을 사랑하지 않았던 걸수도. 엔지니어 커리어에는 코드리뷰, 오픈소스, 커뮤니티, 함께자라기 문화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방향성과 접근방식은 달라도 어떤 형태로든 모일 수 있는 생태계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되돌아보니 예술과 엔지니어링이 닮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냥 그림그리길 좋아해서 미술학원에 다니다가 예술학교에 간 것처럼, 흩어진 글자들이 논리적인 아키텍쳐로 모아져 의미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게 신기하고, 나의 성향과 잘 맞을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때문에 엔지니어의 길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일상에 스며드는 프로덕트 엔지니어가 되고싶다. 전시를 보러올 사람들의 동선을 테스트하던 때, 친구의 패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찾고 하나하나 소품 수작업을 할 때, 다큐멘터리 주인공 15년간의 모든 인터넷 기사를 리서치하고 연출방향을 검토할 때, 그 모든 때의 마음이 지금 나의 엔지니어로서의 마음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냥 보통의 직장인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서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고싶다. "4년이나 덜 공부한 비전공자"의 오기와 그 누구보다 유저를 생각하는 태도, 스스로를 믿는 막연한 마음으로 10년은 더 해내보고 싶다.